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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노동의 역사

돌 깨는 사람들(Les Casseurs de pierres)/1849년 캔버스에 유화, 159X259cm, 드레스덴 국립미술관(원작은 1945년 소실)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ins

 

대는 금융시장이 실물시장을 지배하는 시대다. 주식시장에서 한순간의 폭락으로 하루아침에 수십조 원의 자산가치가 사라지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도 실물시장에서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그 많은 자산은 어디로 증발한 것인가? 이런 신기루 같은 금융자산의 변동성을 보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국부(national wealth)의 원천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실물시장에서 인간의 노동을 통해 창출된 생산물의 가치야말로 부(富)의 본원적 근간이 된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의 노동은 신성하다. 노동으로 생산된 가치야말로 부의 원천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만든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문 위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아직도 붙어 있다. ‘Arbeit Macht Frei(노동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나치가 강제노동을 정당화하는 구호로 쓰기는 했지만 노동의 가치를 잘 표현한 말이다.
노동의 역사를 보면 서양에서는 인간의 노동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서양에서 인간 노동의 연원은 구약의 창세기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짓고 낙원에서 추방된 후에 인간은 거친 땅에서 엉겅퀴에 긁히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힘든 노동을 해야 먹고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동의 기원에 대한 소위 ‘낙원 추방’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 노동에 대한 시각은 지극히 부정적이며, 거친 노동은 죄에 대한 일종의 징벌로서 인간에게 씌워진 굴레였다.

 

그 후에 막스 베버에 이르러 인간노동의 좋은 면이 비로소 부각된다. 근면한 노동과 절약의 정신은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萌芽)가 됐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신에 의해서 부름 받은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라 여기게 됐다.
노동을 한자로 쓰면 ‘勞動’이다. 두 글자 모두 힘 ‘력(力)’ 자가 들어가 있다. 노동이 그만큼 힘이 든다는 뜻이다. 이런 노동을 통한 소득을 지칭하는 영어단어는 ‘earnings’다. 이 말은 단순히 소득을 의미하는 ‘income’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 땀을 흘려 번 ‘노동의 대가’라는 뜻이 숨어 있다.
미술 사조를 보면 르네상스 이전에는 화가들이 주로 종교화를 많이 그렸다. 성경이나 신화, 예수의 생애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지금 유럽 성당에서 보는 그림들은 대개 그때 그려진 그림들이다. 그 후 화가들은 왕이나 귀족에 고용돼 그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당시 화가의 임무는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있었다. 아름다움을 화폭에 그리는 것, 그것이 곧 예술이었다.

 

화가들이 노동자를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고전주의를 지나 사실주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화가들은 현실 세계에서 눈에 보이는 인간의 삶 자체를 정직하게 화폭에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궁핍하고 추한 인간의 모습일지라도 말이다. 그 이전의 화가들에게는 인간 세상의 추한 면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미술 사조로서 사실주의는 19세기 중반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 ois Millet), 오노레 도미에(Honor? Daumier) 등의 화가들이 지향했던 화풍과 기법을 말한다. 사실주의라는 용어는 1855년 쿠르베가 당시 주목받지 못한 자신의 작품들을 모아 전시한 개인전에 ‘리얼리즘(r? alisme)’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쿠르베의 이러한 입장에 당시 미술계는 그의 태도가 사회주의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이에 대해 “나는 혁명의 지지자고 공화주의 자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사실주의자”라고 자신을 변호했다.
쿠르베는 농부, 노동자들의 누추한 모습과 중산층 부인들의 뚱뚱하고 세속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이처럼 사실주의 화가들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기록을 지향하며 현실을 주관적으로 변형·왜곡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그리려고 했다. 쿠르베의 ‘돌 깨는 사람들’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과장이나 꾸밈 없이 묘사하고자 했던 그의 사실주의 미술을 집약한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1855년 파리 국제전에 출품했으나 거절당했다. 그의 그림은 아름다운 것만을 표현하는 당시 화단의 전통과 사회관습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었다. 쿠르베의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소실돼버려 원작을 감상할 수 없다. 그 예술적 손실이 실로 안타깝다.
‘돌 깨는 사람들’을 보면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모자 쓴 인부가 한낮의 뙤약볕 아래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도끼로 열심히 돌을 깨고 있다. 그는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어 보이며, 찢어진 조끼에 무릎을 기운 남루한 바지를 입은 채 힘겨운 노동을 하고 있다. 그를 거들고 있는 젊은 노동자는 찢어진 윗도리를 걸친 채 무거운 짐을 무릎으로 받치고 있다. 이들은 힘에 부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림에서 묘사된 노동자들의 현실은 힘든 육체노동으로 먹고살 만한 소득을 얻기가 얼마나 고단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쿠르베는 이처럼 가난한 서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그 실상을 고발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상류층을 비난했다.
경제학자의 눈은 쿠르베나 밀레와 같은 사실주의 화가의 눈과 같을 것이다. 경제학자는 노동자의 삶과 임금의 문제를 윤리적인 구호나 고용주의 동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적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이 과제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과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돌 깨는 사람들’을 그린 쿠르베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